2013년 1월 24일 목요일

Ruedi Baur



 RUEDI BAUR.


도시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루에디 바우어(Ruedi Baur, 1956~ )는 디자인은 “도시 환경의 변화를 담아내며, 그 변화의 과정을 전달함으로써 도시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새롭게 개발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라며 자신은 방향표식과 정보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루에디 바우어는 프랑스 출신으로 현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20여 년간 프랑스 및 유럽의 공공사업에 참여해 도시 아이덴티티와 컨텍스츄얼한 사인체계(Contextual Signage System)를 작업해왔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성장한 그는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 사이를 유랑하며 서로 다른 차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스위스 취리히 응용미술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가 그래픽디자인과 건축 등 여러 학제들과의 실험적인 협업을 시도하였다. 그가 즐겨 말하는 ‘다학제성(pluridisciplinarity)’은 모든 작업의 핵심이 되는 키워드이다. 그런 개념에서 시작된 ‘엥테그랄 컨셉((Intégral Concept)’ 스튜디오는 파리와 취리히를 비롯한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되어 ‘엥테그랄 루에디 바우어 에 아소시에(Intégral Ruedi Baur et Associés)’란 이름의 독립 스튜디오들로 결실을 맺었다. ‘엥테그랄’은 ‘통합’을 의미하며, ‘엥테그랄 루에디 바우어 에 아소시에’는 ‘루에디 바우어와 그의 협력자들’을 뜻한다. 이 스튜디오는 하나를 창출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것이 결합되는, 즉 디자인과 타 학제간의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엥테그랄 스튜디오는 여러 영역 간에 위계구조를 무시한다. “자기 스스로를 전문가로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같이 일을 한다.”는 그의 말 속에서 이것을 엿볼 수 있다.

1998년 당시 파리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퐁피두센터는 공간 리노베이션과 함께 새로운 분위기를 디자이너에게 요구했다.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퐁피두센터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적인 장소이다. 이곳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작업에 참여한 루에디 바우어는 사인 체계를 새롭게 디자인했는데, 벽이나 바닥 대신 공중에 떠 있는 사인 등으로 차별화했다. 그는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유사성이 아닌 차별성에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퐁피두센터의 사인 그래픽에 다문화성을 반영해 다양한 언어로 제작하고 이를 중첩시켜 입체적인 건축 요소로 강조했다. 또한 공간의 용도에 따라 센터 1층 로비에 사인물을 많이 배치하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이를 줄여나갔다. 현재는 퐁피두센터의 사인 그래픽은 새로 교체되어 그의 작업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퐁피두센터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강렬히 남아 있다.

 
퐁피두센터


디자인과 법의 관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법과 그의 시각결과물(La loi et ses conséquences visuelles)]이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서 디자인은 법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고, 나라마다 건축물의 외양을 보면 그 나라의 법체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루에디 바우어는 디자이너로서 국제기준, 표준화를 거부하기보단 그 안에서 변형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공항은 국제표준에 맞는 방향표식이 필요한 곳이다. 어느 도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며, 소위 국가간의 공유지로 존재하기에 별다른 특징을 갖지 않아 중립적이다. 따라서 도시마다 공항의 규모가 다를 수 있겠지만, 공항의 고유한 특색을 가진 곳은 거의 없다. 반면에 루에디 바우어는 공항을 도시의 일부로 여기며, 국제 기준을 따르면서도 공항의 사인 체계를 변형시켰다.

쾰른 본 공항은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귀여운 픽토그램과 그래픽 사인물로 덮여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게 정말 진짜야? 합성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로, 공항의 분위기를 믿을 수 없어 한다. 그는 공항을 이용하는 대상을 젊은 여행자들로 파악해 350개의 픽토그램과 실루엣으로 다양한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이 작업은 공항 내부뿐만 아니라 공항 홍보엽서, 명함, 기념품, 안내문, 인터넷 사이트까지 전부 하나의 통일된 아이덴티티로 연출한 것이었다.

쾰른 본 공항


루에디 바우어의 프로젝트 중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사인 시스템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작업은 영상, 특히 빛의 각도를 이용한 사인물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스 영화의 산실이라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는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 형태에서 착안한 사인체계를 시도했고, 로고는 영화 스크린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들을 겹쳐 만들었다. 내부의 사인물은 정보전달 이상의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영상의 특성인 빛을 이용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입구 쪽으로 사람들의 동선을 유도하거나, 매일의 프로그램에 맞게 가변적인 사인체계(영상물 보기)를 보여준다. 영화도 하나의 환영처럼 극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지 않은가. 빛을 이용한 사인체계는 영화의 환영성을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루에디 바우어는 스스로를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대신 그는 책이나 편집 디자인이 아니라 도시의 맥락 속에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이다. 지금도 그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유럽 일대를 오가며 자신의 협력자들과 함께 도시를 변용하며 정말 ‘살 맛나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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